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형주 공방전 (문단 편집) === 결말 === 이로써 형식적으로 형주 소유권에 대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. 이제부터는 땅을 빌렸느니 돌려주느니 이런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. 그러나 오 측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[* 협상 시점에서 오는 형남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, 유비 측 잔당을 일망타진하는데 실패했으며 익양에서 관우와 노숙이 대치하고는 있었지만 후방엔 문제가 없었던 반면, 유비는 익주를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'''조조가 한중에서 장로를 공격하면서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었다.''']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해 큰 불만을 품었다. 또한, 형주를 기반으로 유비가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손권 측에서는 유비를 부려서 조조를 막겠다는 주유 - 노숙의 전략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.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노숙의 뒤를 이은 대도독 여몽. 한편 유비 측에서도 관우는 손권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다. 이는 또 다른 파국을 낳는 원인이 된다.[* 217~219년 즈음 오지의 여러 인물들의 기록을 보면 오나라 전체적으로 관우를 치려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. 물론 이에 대해서 배신이라고 굳이 생각하지도 않았고 일단 저 거슬리는 유비부터 치고 봐서 이득을 얻자는 시각이 팽배했던 것. 어차피 서로 감정 상할 대로 상해있었고 손권은 노숙이 죽은 이후 노숙이 남군을 빌려주라고 요청한 것은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.] 한편, 노숙이 217년에 사망하고 여몽이 노숙을 대신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